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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초기 출연연 연구자들이 속속 정년을 맞는다. 당장 올해부터 정년퇴직이 이어진다. 1980년대 출연연이 세부기관으로 분화·설립된 후 30여년 이 지나면서 앞으로 5년 이내에 약 1400명이 정년을 맞아 퇴직한다. 연구직이 1000명 가까이에 이른다.

정년퇴직하는 원로 연구원이 늘어나면 그만큼 젊은 연구원을 충원할 수 있게 된다. 그동안 심했던 인사적체 문제를 자연스레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셈이다. 이를 계기로 출연연에 새로운 변화가 일 것으로 기대된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에 따르면 NST 소관 25개 출연연에서 올해부터 오는 2021년까지 5년 동안 총 1388명이 정년 퇴직한다. 연구직이 67.2%인 933명이다. 우수연구원으로 정년을 연장하는 경우를 고려하지 않을 경우지만 전체 연구직 8964명 가운데 10.4%를 차지하는 수치다.

연구직 정년퇴직자는 올해 131명에서 내년에 157명, 2019년 199명, 2020년과 2021년에는 각각 220여명으로 늘어난다.

출연연별로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171명으로 가장 많고, 한국원자력연구원이 169명으로 두 번째로 많다. 퇴직자 비율은 한국식품연구원이 150명 가운데 29명(19.4%)으로 가장 높다.

이같은 출연연 정년 퇴직 행렬은 2022년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진다.

출연연 안팎에서는 정년 퇴직 후 일어날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조직 내 인력구조 유연화가 특히 주목된다. 정년 퇴직으로 생기는 빈 자리가 전체 출연연을 변화시키는 단초가 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출연연은 경직된 인력구조를 지닌 것으로 평가됐다. 정년이 유지되는 동안 외부로 인력이 유출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반면에 인력정원(TO)은 한정돼 있어 신규 인력 수급이 어려웠다. 비정규직 인력, 학생연구원이 급격히 늘어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출연연 전체 인력(NST 소관)은 1만5899명이다. 반면 TO는 1만2306명에 불과했다. 2014년 말 1만1387명에서 1000명 정도 늘어나는데 그쳤다. 출연연의 비정규 연구직은 2677명, 학생연구원은 4131명이다. 고령 연구원의 정년 퇴직이 시작되면 이런 비정상적인 구조가 개선돼 연구조직을 유연화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도래와 같은 새로운 환경변화에 맞춰 인력을 수급하는 길이 열린다.

최근 출연연은 융합화, 기술혁신 패러다임에 대응해 서로 다른 학문을 융합하는 학제간 연구에 관심이 높다. 고령 연구원 정년 퇴직으로 확보한 TO로 기존에는 없었던 전공 연구원을 영입하면 출연연 안에서 융합연구, 학제간 연구를 활성화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내부에서 무인자동차시스템을 이용한 건축 및 토목 연구를 진행하거나 한국식품연구원에서 생물학이나 화학과 같은 기초과학 전공자를 영입해 식품 영양의 질을 높이는 연구를 할 수 있게 된다.

정년 퇴직자가 계속 늘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출연연 전체의 고령화를 늦추는 역할도 한다. 출연연은 현재 50대 이상이 30%를 넘는다.

출연연 지난 6월 기준으로 50대 이상 정규직이 3827명이었다. 전체 정규직 1만2178명 가운데 31.4%에 해당한다. 40대는 4615명, 30대는 3224명이었다. 정년퇴직이 진행되면 고령화 정도가 크게 낮아질 전망이다.

엄미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전략기획실장은 “앞으로 계속될 출연연 내 정년 퇴직자 발생은 조직의 인력구조를 유연화하고 연구 역량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면서 “정년 퇴직 인력을 대신해 들어올 젊은 인력들은 출연연을 젊게 만들고, 새로운 연구 영역에 도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출연연 인력구조의 유연화는 전체 출연연의 역할 재정립을 돕는 역할도 한다. 과거 해외 기술의 획득, 국산화에 집중했던 연구인력들이 정년을 맞으면서, 새로운 출연연의 역할에 보다 적합한 조직을 구현할 수 있다.

출연연은 1999년 연구회체제 출범 이후 과거 기술 국산화 중심의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버리고 기초원천기술, 대형공공기술 개발을 주요 역할로 정립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국가사회적 임무를 수행하고, 글로벌 이슈를 선도하는 새로운 연구에 방점을 찍고 있다.

지금까지는 50대 중반 연구원이 중심축을 이뤄 왔다면 앞으로는 현재 40대 이전의 젊은 연구원들이 주축을 이루ㅁ는 '출연연 조직 새판짜기'가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운 미션, 연구경력, 경험을 공유하는 인력으로 연구현장의 결속을 도모할 수도 있다.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된 출연연 변화 요구와 혁신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출연연 인력구조 유연화는 정부가 추진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도 연결된다. 정규직에 빈자리가 생기면 비정규직을 TO 확대 없이도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 물론 보편타당한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기회의 문은 확실히 넓어진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앞으로 계속될 연구인력 정년 퇴직은 그동안 출연연이 안고 있던 다양한 문제의 해법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선배 연구자를 떠나보내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이를 기반으로 더 나은, 국민에게 신뢰받는 출연연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