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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자동차가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 여파로 2분기에 역대 최악의 성적을 냈다. 그룹의 주요 계열사 실적도 동반 추락했다. 현대차 그룹은 자동차 원재료인 강판부터 자동차 제조와 판매, 해외 운송과 할부 금융까지 전 과정을 수직 계열화한 기업이다. 이 연결고리 탓에 현대·기아차의 실적 부진은 다른 계열사에도 직격탄으로 작용했다.

현대모비스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7.3% 줄었다. 현대위아의 2분기 영업이익은 무려 66.8%나 급감했다. 자동차용 강판을 만드는 현대제철의 영업이익도 18.8% 줄었다. 완성차의 해상 운송을 담당하는 현대글로비스의 매출은 9.1% 늘었지만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7.5%, 8.0% 감소했다.

우리나라는 재벌 그룹 중심의 고도 성장기를 거쳤다. 수직 계열화는 큰 강점을 발휘했다. 현대·기아차는 수직 계열화로 비용 절감, 부품 수급, 원가 경쟁력 측면에서 우위를 점해 글로벌 업체로 성장했다.

삼성전자 역시 강력한 수직 계열화로 계열사 간 시너지를 극대화했다. 스마트폰, TV, 가전 부문에서 글로벌 최고 수준에 올랐다. 여기에 필요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주요 전자부품을 계열사에서 조달하면서 그룹의 덩치를 키웠다. 완성 제품(세트)와 핵심 부품에서의 강점은 삼성전자가 애플, 퀄컴, 인텔 같은 글로벌 대기업들과 싸울 강력한 무기였다. SK, LG, 롯데 등 다른 대기업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주력 기업과 계열사를 촘촘하게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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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궈칭 시장(중앙 오른쪽)을 비롯 충칭시 관계자들이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중앙 왼쪽)과 함께 시험생산하고 있는 충칭공장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최근 현대차가 겪는 문제는 수직 계열화 시대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강력한 연결고리는 호황기에 큰 시너지를 내지만 불황기에는 위험 분산을 어렵게 한다.

이제 '탈 수직 계열화'를 준비해야 한다. 우선 그룹 내부의 힘만으로 글로벌 경쟁 요소 모두를 적기에 확보하기 어렵다. 이종 기술 간 융합도 늘어난다. 필요한 것은 인하우스 개발보다 외부 소싱을 빨리 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낳는다.

기술 변화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조금만 실기해도 바로 경쟁력 순위에서 밀려나곤 한다. 내부 경쟁력을 따지기보다 좋은 것을 빨리 취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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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업의 위치가 예전과 달라졌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과거 후발 주자 자격으로 단기의 압축 고성장에 '올인'했다. 이 시기에는 분산보다 집중화가 절대 가치였다. 되는 쪽으로 힘을 모아 앞으로 밀고 나가는 게 중요했다. 우리가 맨 앞에서 뛰는 게 아니라 2, 3등을 목표로 추격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좋은 모델을 따라 하기만 하면 됐다.

지금 우리 기업의 위상은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가 아니라 '퍼스트 무버(선도자)'에 가깝다. 매를 먼저 맞아야 할 상황이 많아졌다. 이전보다 유연한 조직 구조를 갖추지 않고는 급변하는 흐름에 올라타기가 어렵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존의 카테고리에서 단순한 점유율 높이기보다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내는 게 핵심 경쟁력이다. 경쟁보다 협업, 독식보다 공유가 각각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것이다. 수직 계열화의 미덕보다 오픈 이노베이션의 장점을 살려야 한다. 수직 계열화 시대가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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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규 전자자동차산업부 데스크 se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