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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문제인가 사람 문제인가.”

우리 사회에 오래된 논쟁거리다. 교통사고와 관련해서는 더 큰 논란이 된다. 거의가 사람 실수로 결론 나는 교통사고, 과연 그렇게만 볼 수 있을까.

최근 경부고속도로 양재 나들목(IC) 인근에서 버스가 승용차를 잇달아 들이받는 사고가 있었다. 버스기사 과로로 졸음운전을 부를 수밖에 없는 시스템에 대한 질타와 함께 자동긴급제동(AEB)을 포함한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의 필요성이 강조된 계기가 되고 있다.

이번 사고로 말미암아 비로소 처음 제기된 것이 아니다. 지난해 7월에는 영동고속도로 상행선 봉평터널에서 관광버스가 제동 없이 앞서가던 차량을 덮치면서 큰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사고 차량에 AEB가 장착돼 있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목소리에 힘입어 신규 생산되는 대형 차량에 차로이탈경고장치(LDWS)와 AEB를 의무화한다는 국토교통부의 '사업용 차량 교통안전 강화 대책'이 발표됐다. 그러나 '길이 11m 이상 크기의 대형차'와 '신규 출시 차량'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이미 도로를 달리고 있는 15만대의 대형 차량뿐만 아니라 길이 11m 미만의 대형 차량도 제외된 것이다. 운수법상 사업용으로 등록 가능한 9m에서 11m 미만 버스 4만5000여대는 정책 사각지대에 남았다. 이번 사고를 일으킨 버스 역시 11m에서 불과 5㎝ 모자란 10.95m였다. 이번 사고를 교훈으로 기존 차량에 대해서도 안전장치 장착을 의무화하는 정책 보강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미래 지향의 결정을 기대해 본다.

AEB가 운전자 과실로 인한 추돌 사고 위험을 38% 감소시킨다는 유럽 자동차안전성능평가 프로그램 연구처럼 ADAS가 가져올 교통사고 감소 효과는 이미 충분히 증명됐다. 그러나 ADAS 보급률은 더디기만 하다. 최근 생산되는 많은 중고급 차량에는 ADAS 기반의 여러 기술이 '편의 장치'라는 옵션으로 들어가 있다. 그러나 차량 구매 때 '비싼 비용'을 이유로 고민케 하는 ADAS가 과연 '편의 장치'인지를 고민할 시점이다.

교통사고의 90%가 운전자 과실로 일어난다는 통계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 ADAS를 통해 운전자의 과실을 줄이고 그로 인해 사고를 줄인다면 사고로 인한 경제 측면뿐만 아니라 경제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생명을 지킬 수 있다. 이 때문에 ADAS는 옵션이 아닌 필수 장치로 인식돼야 한다.

에어백이 과거 일부 고급 자동차에만 들어가던 편의 장치이던 시대를 지나 안전을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수 장치'로 인식되고 있다. 기본 사양으로 적용되면서 많은 생명을 구했다. ADAS 역시 이른 시일 안에 에어백과 같은 방향으로 장착이 의무화돼야 하고, 이는 생명을 구함은 물론 관련 시장 활성화와 자율 주행 기술 확보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ADAS 기술이 모든 자동차 사고 예방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법 테두리 안에서 사업자와 운전자가 지켜야 할 의무가 우선이고, 안전망 확충 측면에서 다양한 대안이 있어야 한다. 오작동에 대한 기능 안전 테스트, 핵심 기술 고도화, 충분한 실증도로 시험 등 연구가 지속돼야 한다. 우리의 전자·정보기술(IT)이 자동차와 융합, 사고 예방에 기여할 부분이 많다. 웨어러블디바이스가 생체 신호를 감지해 정 시그널을 보내고, 아이 트래킹으로 비정상 환경에서 인터랙션이 가능하다. 수십가지 센싱 기반의 운전자보조시스템 단계별 적용과 V2X 응용 솔루션도 예방 접근 방법으로 고려할 만하다.

충남 천안의 한 택시회사가 62대에 ADAS를 장착하고 6개월 운영한 결과 사고 감소로 인해 수리비가 기존액 대비 약 43%, 대물보상금 50%, 대인보상금 57%, 택시공제조함 공제료 25%가 감소되는 등 전체 유지비용이 52%나 줄었다. ADAS가 비단 안전을 위한 투자일 뿐만 아니라 경제성과 운수회사 평판 측면에서도 긍정 지표임을 보여 준다. 구글이나 테슬라 등 선진국이 주도하고 있는 자율주행자동차의 보편화가 그리 멀지 않은 지금 ADAS 기술 보편화로 국민 안전을 보장하는 한편, 자율주행 기술을 확보하는데 유리한 발판을 마련하는 것을 제안한다.

남인석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 상근부회장 namis@goke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