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하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출범 전부터 강한 반발에 부닥쳤다. 친핵 진영은 공론화 추진 자체에 부당성을, 반핵 진영은 위원회 추천과 진행 방식에 불만을 각각 표출했다. 세부 운영 방침도 명확하지 않아 운영 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16일 정부와 각계에 따르면 국무조정실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 위원 선정을 위한 추천 절차에 들어갔다. 이에 앞서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 14일 기습 이사회를 열고 신고리 5·6호기 공사 일시 중단을 의결했다.

한국행정학회,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한국사회학회 등 6개 단체가 총 24명의 후보군을 구성하고 그 가운데 위원장 1명을 포함한 9명을 가린다. 원전 찬·반 대표기관이 선정 위원을 제척할 수 있는 과정도 거친다. 고리 5·6호기의 운명을 좌우할 시민배심원단도 선정한다.

공론화 작업이 시작되지만 성공을 점치는 이는 드물다. 일시중단을 결정한 한국수력원자력의 기습 이사회에 비난이 커지는 가운데 탈원전 정책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는다. 학계 일각에서는 탈원전 정책 자체에 대한 국민투표를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정부의 일방향식 탈원전 속도내기로 사회 전반에 걸쳐 진통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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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모두가 수긍할 사회적 합의 어려워

한수원 이사회가 공사 일시중단을 의결하면서 이제 공은 국무조정실이 추진하는 공론화위원회로 넘어왔다.

공론화위원회 최우선 원칙은 중립성·객관성·수용성 확보다. 정부가 앞서 국무회의에서 신고리 5·6호기 공사 일시중단을 논의한 것도 이 때문이다. 투명성과 신뢰성을 인정받는 공론화를 통해 국민의견 수렴과 사회적 합의를 도출한다는 목표다.

정부 구상과 달리 공론화 작업을 통한 결론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긴 힘들다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친핵과 반핵 진영 간 의견 대립이 첨예하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한 쪽은 이를 인정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실제로 원자력계는 공론화 작업 시작 전부터 “정부가 미리 결과를 정해놓고 한다”고 주장했다.

원전 정책에 대한 국민의견 수렴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도 꾸준히 이어졌다. 올해 초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 발표한 '2016년 원자력 국민인식 정기조사 결과'가 대표적이다. 제3기관을 통해 1:1 대면 면접방식으로 1009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결과의 요지는 원전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국민이 더 많다는 것이었다. 경주 지진 이후 부산·울산·경주 지역에서 인식도가 낮게 나왔지만, 원자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78.6%, 안전하다는 의견은 52.6%로 조사됐다.

조사결과는 환경 및 반핵단체 사이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설문조사 추진 주체가 원자력문화재단이고 표본집단 투명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다. 조사를 수행한 제3기관은 본 조사에 대한 신뢰도를 95% 표본오차는 ±3.1%로 보고 있지만 반핵단체에게는 의미없는 숫자다.

반대 경우도 있다. 반핵단체는 2015년 실시된 영덕 주민투표를 원전 건설 반대 여론자료 중 하나로 든다. 반핵단체는 영덕 주민 투표에서 신규원전 건설 반대의견이 91.7%로 나왔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반핵단체 주장과 달리 이 투표는 주민투표로 인정받지 못했다. 지역 유권자 3만4432명 중 1만 1201명이 참여해 32.53% 투표율을 기록했다. 주민투표법에 규정된 법적 효력에 필요한 33.3%에 못 미쳤다.

◇공론화 절차 놓고도 논란 끊이지 않아

공론화 방법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3개월이란 짧은 기간 동안 충분한 논의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과거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신고리 5·6호기 건설 승인에는 30개월이 걸렸다.

공론화 방식도 우리에게 익숙지 않다. 그동안 일반 시민의 정책참여는 공청회 등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는 수준이었다. 이번에는 위원회가 공론화를 진행하고 이를 지켜본 시민배심원단이 최종 결정을 내리는 방식이다. 시민에게 참여를 넘어 결정권까지 준다.

원자력 관련 공론화의 대표 사례인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와 비교된다. 사용후핵연료는 20개월의 공론화 기간을 거쳤다. 각 지역을 돌며 의견을 청취하고 전문가 조언과 내부 논의를 거쳐, 사용후핵연료 저장부지 마련 계획 권고안을 도출했다. 위원회는 권고안을 산업부에 제안했고, 산업부는 원안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이에 따른 '고준위방폐물 관리절차법'을 발의, 국회 상임위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국무조정실은 시민배심원단이 내린 결정을 무조건적으로 따른다는 입장이다. 배심원단 결정의 법적 구속력 여부가 논란이 될 전망이다. 국무조정실은 결과를 온전히 따른다는 방침이지만 국회 의결과 달리 배심원 결정은 법정 구속력이 없다. 논쟁의 불씨가 계속 남는다. 정부가 운영 근거와 역할 범위를 명시한 별도 법령을 마련할지 주목된다.

최종 결정이 나오기까지 과정에서 국회는 배제될 가능성도 있다. 사용후핵연료는 그동안 없던 관리 기준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는 점에서 법안 신설이 필요했지만, 원전은 이미 전기위원회의 발전사업 면허취소, 이미 정부가 한 차례 사용한 바있는 협조요청 후 한수원 이사회를 통한 중단 등의 방법이 있다.

건설계획 폐지로 결정나면 최종 결과는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된다. 신고리 1호기 영구정지때도 한수원 이사회가 산업부 권고를 받아들여 계속운전 연장신청을 하지 않기로 했다. 최종적으로 7차 전력계획에 폐지계획 설비 내용이 담겼다.

야권의 반발은 불 보듯 뻔하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공론화와 관련해 국회와의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산업통상자원위원회라는 소관 상임위를 놔두고 시민배심원단이 결정하는 것도 논란 대상이다. 선거를 통해 당선된 30인의 산자위 위원이 아닌 기관이 추천한 10인의 시민배심원단이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적이 계속된다.

원자력계 인사는 “정부가 탈 원전 정책 시작점으로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의 사회적 합의를 언급하지만 공론화 추진부터 합의가 안 됐다”며 “합의에 근거한 결론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과학계 한 교수는 “공론화로 결론이 날 문제도, 신고리 5·6호기만의 논쟁으로 끝날 사안도 아니다”라면서 “미래 원전·에너지 정책을 수립하려면 국민투표 방법도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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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국민인식 설문조사 5대 지표(자료:한국원자력문화재단)

조정형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