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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한국형 망 중립성 논의 시급

발행일2017.07.1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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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결국 망 중립성 갈등이 폭발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3년여 만에 망 중립성 원칙 폐기 움직임을 보이자 인터넷 사업자가 집단행동으로 맞섰다. 네트워크 사업자 입장을 옹호하는 정부가 망 투자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단호한 입장이어서 망 중립성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최초의 5세대(5G) 이동통신 상용화를 앞둔 한국에서 망 중립성 원칙 재정립이 시급할 것으로 보인다.

◇망 중립성 갈등 폭발

12일(현지시간) 8만개가 넘는 미국 인터넷 사업자가 망 중립성을 폐지하려는 정부 정책에 항의하는 온라인 집단행동을 시작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인터넷이 모두를 위해 개방형 플랫폼으로 유지돼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면서 “페이스북은 그 규칙을 강력 지지한다”고 밝혔다.

구글은 공식 블로그에 올린 망 중립성의 필요성을 역설한 글에서 “열린 인터넷을 보호하던 망 중립성 원칙이 해체될 위기에 처했다”면서 “대형 인터넷 사업자부터 혁신 스타트업, 수백만의 인터넷 사용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망 중립성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AT&T와 버라이즌 등 네트워크 사업자는 망 중립성 규제가 투자 유인을 떨어뜨려서 결국 미국 인터넷 인프라를 낙후하게 만든다고 맞서고 있다. 망 중립성이 인터넷 사업자에겐 혁신의 원동력일지 모르지만 네트워크 사업자에게는 신규 비즈니스 모델 발굴을 막는 장벽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밥 퀸 AT&T 부사장은 11일(현지시각) 공식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AT&T는 지난 10여년 동안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오픈 인터넷 규칙' 준수에 협조했다. 이는 혁신이나 투자를 방해하지 않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라면서 “그러나 2015년에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조심성 없이 80여년 전의 다이얼 전화기 시대 규제로 퇴보하고 말았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망 중립성을 반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버라이즌 출신의 아지트 파이를 FCC 위원장에 임명할 때부터 예견됐다. 파이 위원장은 망 중립성에 대해 “심각한 실수”라고 언급한 바 있다. 결국 FCC는 5월 예비 투표에서 2대 1로 망 중립성 폐기 방안을 가결했다. 8월 말까지 일반 의견을 수렴한 뒤 최종 표결한다.

◇미국의 뿌리 깊은 망 중립성 갈등

미국의 망 중립성은 1934년까지 거슬러 오른다.

AT&T의 전화 시장 독점을 보다 못한 미국 의회가 통신법을 제정하고 '커먼 캐리어' 개념을 도입했다.

1876년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전화 특허를 획득하고 전화 서비스를 제공한 이후 특허 만료로 많은 기업이 시장에 진출했는데도 독점 상황이 변하지 않은 것이다. AT&T는 경쟁 기업 인수합병(M&A), 장거리 네트워크 접속 거부 등 공정 경쟁에 걸림돌이 됐다.

커먼 캐리어(공중 전기통신 사업자나 기간통신 사업자)는 적절한 요금을 부과할 것, 인종·종교·성별에 차별받지 않고 동등하게 통신 서비스를 받도록 할 것 등 원칙을 담은 개념이다. 망 중립성의 기본 이념은 커먼 캐리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개인용 컴퓨터가 등장하고 인터넷 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네트워크 사업자와 인터넷 사업자 간 갈등이 점차 고조됐다.

한 예로 2007년 컴캐스트가 망 과부하를 이유로 개인간(P2P) 접속을 제한하자 FCC가 이를 금지하고, 법원이 다시 FCC는 규제 권한이 없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2010년 마침내 FCC가 '오픈 인터넷 오더'를 통해 망 중립성 원칙을 입법화했다. 그러나 버라이즌이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다시 네트워크 사업자의 손을 들어줬다. FCC의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연거푸 '권한 없음' 판결을 받은 FCC는 아예 법을 바꿔 권한을 신설했다. 통신법 분류 체계에서 네트워크 사업자를 커먼 캐리어 의무가 있는 '타이틀2'로 분류한 것이다. 2015년의 일이다. 강력한 망 중립성 규제가 탄생한 것이다.

버락 오바마에 이어 등장한 트럼프 행정부는 망 중립성을 강력 비판했고, FCC는 5월 망 중립성을 폐지하는 결정을 내린다. 8월 최종 투표에 달리긴 했지만 폐지 가능성이 짙은 것으로 관측된다.

◇망 투자비 분담 갈등…한국형 망 중립성 원칙 시급

망 중립성 개념이 변하고 있다. 초기에는 네트워크 사업자의 불공정 행위가 관심사였지만 이제는 트래픽 급증에 따른 망 투자비 분담이 논의의 핵심이다.

플랫폼 사업자의 성장과 동영상 서비스의 증가에 따라 트래픽 급증 현상이 각국에서 나타났고, 고화질 동영상 증가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더욱이 통신 시장 성장은 정체된 반면에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플랫폼 사업자는 높은 수익률을 구가하고 있다.

네트워크와 인터넷 사업자 사업 영역이 겹치면서 갈등은 더욱 커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모바일 인터넷 전화(mVoIP)가 대표 사례다.

이런 현상은 5세대(5G) 이동통신을 중심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5G 네트워크는 이전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면서도 대용량의 정보를 실어 나른다. 더욱이 '네트워크 슬라이싱' 등 기술을 활용, 정보 전송 속도를 다르게 할 수도 있다. 네트워크 사업자에게는 망 중립성을 위반하고 전송 속도를 차별화할 유인이 생기는 것이다.

사업 영역 중첩도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네트워크 사업자와 인터넷 사업자 모두 자율주행자동차,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네트워크 사업자에게 5G 망 투자비 분담이라는 유인책을 주지 않는다면 5G 투자 의욕이 위축될 우려도 있다. 세계 최초의 5G 상용화를 노리는 한국에서 망 중립성 논의가 시급한 이유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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