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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햄버거 빵을 납품하는 A중소기업은 최근 걱정이 생겼다. S식품이 햄버거 빵 시장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S사는 적합 업종으로 권고 받은 햄버거 빵이 아닌 인스턴트 햄버거를 직접 만들어 납품하면서 규정을 피해 갔다. 올해 매출 목표만 약 500억원이라고 한다.

A중소기업은 중소기업 적합 업종 지정을 계기로 약 150억원을 공장 등 인프라 구축에 투자했다. 그러나 대기업의 꼼수 진출과 적합 업종 종료 기한까지 다가오면서 매일 걱정으로 밤을 보내고 있다.

꼼수 진출 사례는 햄버거 빵뿐만 아니라 순대도 마찬가지다. 순대는 적합 업종으로 지정되면서 아워홈이 철수하는 등 잘 지켜지던 품목이었다.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지정된 47개 품목이 9월부터 12월까지 순차 해제된다.

적합 업종 권고 기간에 대기업의 꼼수 진출에 싸워야 한 중소기업은 이제 대기업과 시장에서 본격 경쟁해야 한다.

적합 업종 품목이 9월 정기국회에서 법제화된다 하더라도 법이 시행되기 전 6개월 동안의 공백이 생긴다. 연말까지 권고 기간이 만료되는 47개 품목은 6개월 공백으로 대기업의 시장 진출을 막을 수 없게 된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는 대·중소기업 간 합리 타당한 역할 분담과 경제 양극화 해소 등을 위해 탄생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2011년부터 자율권고·합의를 통해 품목을 지정했다.

권고 내용은 진입 자제, 확장 자제, 사업 축소, 사업 이양, 시장 감시, 상생 협약 등이다. 기간은 최장 6년(한 차례 3년 연장 포함)이다. 적합 업종은 제조업 54개, 서비스업 18개 등 총 72개 품목이 지정돼 운영되고 있다.

이들 업종은 올해 9월 골판지 상장, 전통떡, 청국장, 순대, 장류(간장, 된장, 고추장)을 시작으로 절반 이상이 해지된다. 11월에는 유리(기타 안전유리, 기타 판유리 가공품), 생선회, 원두커피 등 14가지 품목이 종료된다. 12월에는 배전반(고압, 저압), 송배전변압기, 재생타이어, 냉동·냉장 쇼케이스, 고압가스충전업(수소, 질소, 산소, 이산화탄소, 에세틸렌, 아르곤), 공기조화장치(에어핸들링유니트, 팬코일유니트, 항온항습기) 26개 품목이 해제된다.

중소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3+3의 총 6년 기간만으로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라면서 “적합 업종 기간에 경쟁력 향상을 위해 혁신 센터 등을 만들어 일부 성과를 냈지만 적합 업종 기간이 만료되면 대기업의 시장 진입으로 모두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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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계는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 완화로 막강한 자본, 브랜드를 앞세운 기업의 골목 상권 침투를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은 5조원에서 10조원으로 완화됐다. 37개 대기업집단의 628개 계열사가 지정 해제 돼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더 많은 기업이 생겼다.

2006년 고유업종제도 폐지 이후 대기업 계열사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총 477개가 증가했다. 이 가운데 387개(81.8%)는 생계형 소상공인 업종에 진출했다.

조희구 제과제빵조합 전무는 “적합 업종 권고 기간에 공장 증설, 해썹(HACCP) 인증 등 많은 준비를 했지만 결국 대규모 자본을 앞세운 대기업과는 상대가 안 된다”면서 “적합 업종이 끝나게 되면 대기업에는 시장 진출을 해도 된다는 면죄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올해 말부터 시장 진출 공세가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소기업계는 적합 업종 법제화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생계형' 중기 적합 업종 법제화를 약속했으며, 현재 국회 입법 돼 이르면 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법제화가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시행까지 최장 6개월이 소요되기 때문에 적합 업종 해제 품목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전통 떡은 SPC가 '빚은'이라는 떡집 체인점 활성화를 추진해 200개에서 1000개로 급속히 확장하던 시점에 적합 업종에 지정되면서 제동이 걸었다”면서 “그 결과 전국 영세 떡집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제도가 끊임없이 이어져야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협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동반위도 법제화가 된다하더라도 6개월 동안 적합 업종을 보호해 줘야 한다는 취지에는 동감한다. 그러나 일방의 연장 결정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강재영 동반위 운영국장은 “문재인 정부가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생계형 품목에 대해서는 법제화해야 한다는 기조가 있었기 때문에 법제화는 기정사실화됐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강 국장은 “동반위가 대·중소기업 합의를 통해 3+3을 끌어낸 만큼 법제화 기간과 법 시행 사이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면서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두루 만나 9월 전에 적합 업종 연장 등의 합의를 끌어낼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정영일기자 jung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