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3국은 첨단 산업 분야에서 묘한 관계를 형성해 왔다. 쫓고 쫓기며,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했다. 3국을 합친 시장 점유율이 전 세계 90% 이상인 첨단 산업 아이템이 대부분이다.

세계를 리딩하는 첨단 산업 분야의 3국 공존은 최소한 지금까지는 한국이 밑지는 장사가 아니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일본의 앞선 기술을 빨리 수용해 패스트팔로어로서 자리를 굳건히 했고, 일부 분야는 일본을 뛰어넘었다. 규모가 큰 중국 시장은 성장 기반이 돼 줬다.

그러나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자본과 기술을 빨아들이는 중국은 더 이상 한국의 성장 기반이 아니다. 또 일본의 축적된 기술력은 한국을 따돌리고 시장이 큰 중국에 직접 진출하는 무기가 됐다. 액정표시장치(LCD)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거치면서 세계 시장 주도권을 확보한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이 장비·소재 등 후방산업에서는 일본을 따라잡지 못하고 중국에는 추월당할 위기에 몰린 것이다.

일본과 중국의 기술 및 시장 협력은 한국 첨단 산업의 미래를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실제로 한국 디스플레이 업체와 독점 계약을 맺고 협력하던 일본 장비 업체가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로 갈아타는 사례가 심심찮게 나온다. 자칫 한·일 공동 개발에 따른 노하우가 중국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문제는 앞으로 이 같은 상황이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조사에 따르면 올 1분기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장비 수주액은 일본은 물론 중국보다도 뒤진 성적표를 받았다. 물론 기술 난이도가 낮은 후공정 장비 영향이 크지만 기술 장벽이 큰 전 공정 장비도 안심할 단계가 아니다. 일본의 장비 수주액은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중국의 장비 국산화 시도가 거세다. 고부가 가치 장비·소재의 최첨단 기술 개발과 대·중소기업 생태계 구축만이 진퇴양난에 놓인 한국 첨단 산업이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