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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은 사회와 산업 구조를 변혁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은 생산성 혁신, 스마트공장 확대, 맞춤형 소량 생산을 가능케 한다. 반면에 일자리 감소, 경제 불평등 등 부작용도 우려된다. 4차 산업혁명의 '빛과 그림자'다. 이런 가운데 일자리를 늘리고 환경 오염 문제를 원천 차단할 수 있는 청색 기술에 관심이 모아진다. 자연계의 빅데이터를 활용한 청색 기술은 첨단 기술 핵심 분야와 연결돼 지속 가능한 선순환 산업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청색 기술 개념과 산업화 현황, 기대 효과 등을 살펴본다.

청색 기술은 생물 구조와 기능을 연구, 자연 친화형의 효율성이 뛰어난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기술이다. 청색은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 색깔이다. 경쟁 없는 새로운 시장을 일컫는 '블루오션'의 블루를 뜻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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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과의 한해살이풀 도꼬마리에서 창안된 벨크로(Velcro), 일명 '찍찍이'.ⓒ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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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크로(Velcro), 일명 '찍찍이'는 국화과의 한해살이풀 도꼬마리에서 비롯됐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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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신칸센은 빠른 속도를 낼 때 나오는 소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물총새의 부리 모양으로 신칸센 열차 앞부분을 디자인했다. ⓒ게티이미지

청색 기술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옷·신발·가방 등에서 양쪽을 붙였다 떼였다 할 수 있는 벨크로, 일명 '찍찍이'가 대표 사례다. 스위스 전기기술자인 조르주 드 메스트랄은 산책길에 자신의 옷에 달라붙는 국화과 한해살이풀 도꼬마리를 눈여겨봤고, 1948년 도꼬마리 씨앗의 수많이 달린 갈고리를 본떠 두 장의 천으로 이뤄진 갈고리 형태의 여미개를 창안해 냈다. 1955년부터 판매된 벨크로는 단추나 지퍼 대용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물총새는 하늘을 날고 있다가 물고기를 발견하면 쏜살같이 낙하해서 물고기를 낚아챈다. 길쭉한 부리와 날렵한 머리 덕분에 수면에 진입할 때 파동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일본 신칸센이 시속 600㎞를 기록하는 등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속철로 이름을 올린 비결의 이면에는 물총새가 있다. 빠른 속도를 낼 때 나오는 소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물총새 부리 모양으로 신칸센 열차 앞부분을 디자인했다.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에 있는 쇼핑센터는 세계 최초의 자연냉방 건물이다. 이 센터는 아프리카 흰개미 집이 큰 일교차에도 일정하게 내부 온도를 유지하는 현상을 응용, 건설했다. 흰개미 집처럼 건물 옥상에 구멍을 뚫어서 뜨거운 공기가 자연스럽게 상승할 수 있도록 하고, 건물 바닥에는 구멍을 뚫어서 찬 공기를 건물로 끌어들였다. 냉방기 없이 최고 섭씨 38도가 넘는 한여름 낮에도 실내온도는 24도를 유지할 수 있다. 흰개미의 지혜를 빌린 덕에 연간 350억원의 전력 절감 효과를 보고 있다.

얼룩말 무늬도 자연냉방의 실마리가 된다. 얼룩말의 흰 줄무늬는 햇빛을 반사시켜서 열기를 낮춘다. 반대로 검은 줄무늬는 햇빛을 흡수, 온도를 높인다. 검은 줄 무늬의 더운 공기와 흰 줄무늬의 찬 공기 사이에 흐름이 만들어지면서 표면 온도는 8도까지 내려간다. 스웨덴 건축가 안데르스 뉘크비스트는 건물에다 흰색과 검은 색을 함께 칠해서 표면 온도를 낮춰 에너지가 절약된다는 걸 보여 줬다.

청색 기술은 21세기 들어와 나노기술(NT)이 발달하면서 더욱 각광 받기 시작했다. 생물 구조와 기능을 나노미터, 즉 10억분의 1m 수준에서 파악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생물을 본뜬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됐다. 도마뱀붙이인 게코 발바닥의 뻣뻣한 털을 활용해 개발한 로봇과 항상 깨끗한 자기 정화 기능이 있는 연잎 표면을 모방해서 만들어 낸 자기정화페인트와 섬유 신소재가 그 예다.

상어와 돛새치의 미세돌기를 응용해 개발된 전신수영복, 남아메리카에 사는 모르포 나비의 구조색을 이용한 모르포텍스, 담쟁이덩굴 점액을 이용한 의료용 접착제, 전복껍데기 구조를 이용한 방탄 소재도 등장했다.

이 밖에 모기 침돌기를 흉내 낸 무통주사기 '나노패스33', 고래 지느러미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풍력 터빈 '웨일파워', 홍합과 도마뱀의 접착력을 본뜬 접착제 '게켈' 등도 청색 기술을 이용해서 시중에 나온 제품이다.

청색 기술은 생물체로부터 영감을 얻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물 영감, 생물을 본뜨는 기술인 생물모방이 대표 기술이다. 생물영감과 생물모방을 아우르는 청색 기술 용어는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이 2012년 7월에 펴낸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에서 '자연중심기술'이라는 낱말을 사용하면서 등장했다.

이인식 소장은 “지구상의 생물은 박테리아가 처음 나타난 이후 38억년에 걸친 자연 연구개발(R&D) 과정에서 갖가지 시행착오를 슬기롭게 극복해 살아남은 존재들”이라면서 “이러한 생물 전체가 자연중심기술 연구 대상이 되기 때문에 청색 기술 범위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고 넓다”고 설명했다.

청색 기술은 생명공학기술, NT, 재료과학, 로봇공학, 뇌과학, 집단지능, 건축학, 에너지 등 첨단 기술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녹색 기술의 한계점을 보완한다. 녹색 기술이 환경오염 발생 이후의 사후 처리를 위한 대응 측면이 강한 반면에 청색 기술은 환경오염 물질의 발생을 사전에 억제할 수 있다.

이 소장은 “생물이 화석연료를 고갈시키거나 지구를 오염시키지 않는 것처럼 청색 기술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면서도 환경오염이나 자원고갈 없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청색 기술이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 줄 것으로 예상한다. 벨기에 출신 저술가이자 기업가, 환경운동가인 군터 파울리는 2010년 6월 자연의 100대 혁신 기술을 경제 측면에서 조명한 저서인 '청색경제'에서 “100가지 자연중심기술로 2020년까지 10년 동안 청색 일자리 1억개가 창출된다”고 제시했다.

실제로 미국 컨설팅 전문 기관인 FBEI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청색 기술 시장은 2025년까지 3500억달러, 세계 시장은 약 1조달러에 각각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나라는 앞으로 5년 동안 500억달러 규모로 시장이 커지고, 일자리도 35만개 이상 창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발 더 나아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도 인류의 지속 성장이 가능한 청색 기술을 통해 이른바 '청색경제(Blue Economy)'를 구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청색 기술 연구도 활발하다. 미국, 독일, 영국, 일본 등이 2000년 이후부터 청색 기술 사업화와 교육에 힘쓰고 있다. 일자리 창출과 환경 보전이라는 일석이조 효과를 달성할 수 있는 청색경제를 만드는 것이 또 하나의 산업혁명이란 얘기까지 나온다. 청색 기술은 미국, 유럽, 일본도 걸음마 단계 수준이다. 이는 곧 한국이 청색 기술에 집중 투자할 경우 '퍼스트 무버(시장 선도자)'로 거듭날 수 있다는 얘기다.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청색 기술을 미래 유망 기술로 선정해 신소재, 바이오, 에너지, 로봇, 항공산업 등의 부가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는 해외 선진 국가의 '빠른 추격자'로서 압축 성장을 해 왔지만 청색경제에서 이제는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도록 산업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광주=김한식기자 h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