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신문은 '거너번스연구회'와 공동으로 지난 3주간 9회에 걸쳐 주요 대선후보 5명의 세부 공약을 분석했다. 거너번스연구회 운영 총괄인 박재민 건국대 교수 총평을 들어봤다.

-대선 후보 공약을 큰 그림에서 평가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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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은 전체적으로 다양하고 신중하게 설계됐다. 하지만 왠지 허전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면도 많았다. 논쟁이 있을 만하면 돌아서는 모습도 보인다. 후보 신념을 찾기 어려운 공약도 다수다. 그래서인지 공약에 힘이 없고 갈팡질팡해 보인다는 시각이 많다. 국민을 얘기하면서 정작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가장 먼저 선택한 주제가 대기업 공약이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대기업 정책은 두 가지에 대해 제대로 답하고 있지 못하다. 첫째 대단히 민감한 문제이지만 어떻게 투명한 정경관계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 명쾌한 답은 피하는 모습이다. 둘째 우리 경제의 대기업 의존을 어떻게 탈피할 것인가에 대해 답을 내놓은 후보가 없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기업 '사회적 가치'는 무엇일까 고민도 필요한데, 결국 대기업 정책도 여기서 시작돼야 한다는 의견을 귀담아둘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 정책은 어떻게 봤나. 가히 백과사전처럼 보였는데.

▲지적에 공감한다. 공약 백과사전이라 부를만 하다. 중소기업청 신설, 불공정거래 척결, 창업 지원, 골목상권 보호 등 열거하기 조차 힘들다. 하지만 그 이상 공감을 불러일으킬 게 많지 않았다. 전담 부처, 공정거래, 징벌적 배상, 공공조달, 스톡옵션, 벤처캐피털 등 다 좋지만 하루하루 팍팍한 삶을 바꿀 미래도 안 보였고 무엇보다 근로자라는 이름으로 매일 땀 흘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빠져 있다.

-소프트웨어(SW) 산업은 4차 산업혁명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상대적으로 약한 산업이면서 동시에 해답을 내놓기 힘들어 보였는데.

▲맞다. 그것이 '거버넌스연구회'의 공통된 평가다. 무엇보다 SW 공약에 절박함이 없다. 후보 모두 SW산업이 미래라고 말하는 듯 보이지만 정말 그렇게 믿고 있는지 의문이다. 마치 30년 전 '제조업 한국'을 상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SW 한국'의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는 듯하다. SW산업에 대한 후보 미래 비전을 묻고 싶다.

-기후변화, 신재생에너지, 원자력발전소 문제 등 에너지 정책은 그야말로 난제 투성이다. 고민의 흔적이 보였는가.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에너지 공약이 자칫 감성적이고 대증적 함정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미세먼지 문제만 보더라도 예전에 없던 핫이슈다. 원자력발전소도 마찬가지다. 후보로서 이 이슈에 대해 국민 감정을 외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이란 격변기를 앞두고 있다. 긴 안목을 갖고 설계할 필요가 있다. 안보, 산업 경쟁력, 기후변화, 민생과 복지투자 균형 속에서 에너지 정책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에너지 공약 자체에 매몰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봤다. 후보 모두 미래 사회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부족해 보였다.

-매번 대선때마다 국가 연구개발(R&D)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바뀌었는가.

▲그렇지 않다. 국가 R&D 공약은 여전히 장밋빛이다. 매번 선거때 처럼 정부 R&D투자는 늘이겠다는 주장이 대세다. 하지만 달라진 모습도 보였다. 우선 자성의 목소리가 곳곳에 섞여 있다. 균형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름의 홀데인 원칙 속에 과학 커뮤니티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과학기술이 기여할 미래 사회 역할에 대해 더 깊이 논의해 보는 것이다. 연구개발을 보는 새 시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흡족한 대답을 공약에서 찾기는 힘들었다는 것이 솔직한 느낌이다.

-정보통신산업 육성은 어땠나. 이동통신 기본료 폐지 같은 국민 관심사도 있고, 독임부처 논쟁도 었었는데.

△ICT 정책은 창의성이 필요해 보였다. 규제 개혁, 통신시장 경쟁 활성화, 가계 통신비 부담 경감, 그리고 미래 ICT산업 재창조라는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목표가 서로 상충되기도 한다. 쟁점도 많다. 이동통신 기본료 폐지,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개정, 제4이동통신사업자 허용 같은 논쟁거리에 답이 서로 엇갈린다. 이런저런 변화가 결국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되지 않을까 우려 목소리도 있다. 반대로 소비자 부담이 된다는 주장이 규제 혁신을 옥죄는 논리로 쓰일까 염려스럽다는 의견도 있다.

-일자리 문제에 대한 고민 없이는 공약이 완성될 수 없다. 4차 산업혁명 걱정거리 중 하나가 일자리문제인데.


△일자리 공약은 그야말로 '숫자의 향연'이다. 문제는 실천 가능성이다. 이번 만큼은 '숫자의 만찬'을 벗어던졌으면 했다. 이 점에서 발상의 전환을 못한 점은 아쉬웠다. 어쩔 수 없었겠지만 후보가 꼭 지키겠다는 몇 가지 약속을 강조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한다. 그랬다면 국민도 공감해 주지 않았을까 싶다. 국민 인식이 많이 성숙해졌다고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지킬 수 있는 약속을 제시하고, 묵묵히 지켜가면 좋겠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