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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과학기술계가 희망에 부풀었다. 대선 주자들이 대덕연구개발특구를 찾아 입맛에 맞는 과학기술 정책을 속속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독임 부처의 부활을 약속하는 대선 후보 캠프가 적지 않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비롯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등 유력 후보가 과학기술 컨트롤타워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성격을 기타공공기관에서 연구목적기관으로 지정하거나 연구 과제를 기초 연구와 민간연구소가 하지 않는 사회 문제 해결형 연구로 전환하겠다는 공약도 쏟아져 나왔다.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4~5% 늘리거나 연구 평가를 결과가 아닌 과정 위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하는 후보도 적지 않다. 연구원 정년을 62세에서 다시 65세로 늘리고, 박사후연구원이나 국가 R&D에 참여하는 학생연구원 고용 계약을 의무화하겠다는 공약도 나왔다.

대덕연구단지에는 공약이 벌써 이뤄진 것처럼 들떠 있는 연구원이 적지 않다. 유력 후보들이 비슷한 정책을 내놓고 있어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다. 어떤 후보가 대통령이 돼야 연구 환경이 더 좋아질지, 누가 더 현장에 가까운지를 놓고 저울질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보인다.

지난 21일에도 과학의 날을 맞아 유력 대선 주자들이 이와 비슷한 과학기술 정책 청사진을 제시했다. 문재인 더민주 후보는 과학기술인 처우 개선과 사람 중심 과학기술 정책을 내세웠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정부 주도 시스템을 민간 주도 시스템으로 전환할 것을 천명했다.

대선 주자가 내놓은 공약은 전혀 낯설지 않다. 대부분 과학기술계에서 요구해 온 사항이다. 마치 대선 주자들이 과기계의 요구를 대변하는 듯하다. 대선 주자들이 과학기술 현장에 그만큼 가까이 다가와 있다는 의미로 보면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기술계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 현장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고 보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사실 대선 때면 대덕연구개발특구를 찾아 이런저런 공약을 내세웠다가 당선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는 사례가 많았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 해도 실행력이 담보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실천 가능한 공약이 필요하다. 국민 세금을 투입하는 국책 연구는 국가에서 미래를 위한 고도 전략을 토대로 진행해야 한다. 세금으로 특정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연구를 하거나 무조건 자율에 맡겨 방치하는 것은 맞지 않다.

연구원 복지만 강조하는 것도 위험하다. 자율을 보장하되 책임은 명확히 해야 한다. 고통 분담을 전제하지 않고 장밋빛 희망만 제시하는 공약은 공약(空約)으로 그칠 가능성이 짙다. 한쪽 요구만 듣고 성급하게 정한 공약도 실천 가능성이 희박하다.

논어 학이편에 '신근어의 언가복야(信近於義 言可復也)'라는 말이 나온다. '의로움에 가까운 약속이라야 실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25일 KAIST에서 대선 캠프와 정당별 과학 정책을 논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과학기술 거버넌스에서부터 출연연의 혁신 및 연구 환경 조성까지 다양한 어젠다를 놓고 각 정당을 대표하는 과기정책 특보가 참여, 심도 있는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후보별로 실천 가능한 공약을 추려낼 수 있는 자리가 되길 기대한다.


대전=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