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당 대선 후보가 내놓은 금융 공약을 보면 그동안 금융권 안밖에서 제기됐던 이슈들이 대체로 망라됐다. 가계부채, 서민금융, 금융감독 개편, 핀테크, 4차산업혁명 등이 담겼지만 내용면에서 공약이 급조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선 장밋빛 말의 성찬이 넘친다. 구체적 실행 계획을 찾아보기 어렵다. 일부 후보 공약은 캠페인성 구호만 있을 뿐 정책 실현 가능성은 전혀 담겨 있지 않다.

포퓰리즘 정책 위주로 제시되는 점도 문제다. 소비자·서민을 강조해야 한다는 점에서 누구나 동의한다. 다만 이러한 가치를 달성하는 방식면에서 반(反)시장적 정책이 없는지, 대증요법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지 꼼꼼히 따져볼 일이다. 일부 후보는 시장에서 결정되는 서비스 가격에 공권력을 앞세워 공공연한 개입을 정당화한 점에서 보다 균형 잡힌 공약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청사진이 제시되지 못하는 점도 아쉽다. 실물부문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는 금융부문이 어떻게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금융부문에 대해 여타 실물부문이나 서민·소비자 이익을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제 우리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금융회사가 탄생할 수 있도록 정책 역량을 집중할 때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금융산업에 어떻게 접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부족하다. 4차 산업혁명을 맞아 금융산업이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지 그리고 금융산업이 여타 부문의 4차 산업혁명화를 선도해 나가고 지원할지 적절한 방안이 없다. 핀테크혁명이라 일컬어지는 핀테크 육성·발전을 위한 정책노력이 제대로 제시되지 않았다. 일부 후보는 막연히 시장자율적 발전만을 되뇌고 있다. 선진국에선 이미 정부차원의 집중적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정책 금융 역할과 발전방향에 대한 처방도 아쉽다. 어느 후보도 기업 구조조정에 주력해온 정책금융기관이 앞으로 우리 경제체질 개선과 중소·벤처기업 지원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수행함에 있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4차 산업혁명을 맞아 중요성이 더욱 커진 정책금융 역할과 기능을 다시 한 번 점검하는 한편, 정부재정과 정책금융의 효과적인 역할분담을 모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금융감독기구 개편만이 능사라는 인식도 문제다. 금융감독체계는 각국 역사적 경험과 정부조직 양태에 따라 다르고 정답이 없다. 중요한 점은 어떠한 감독체계를 채택하든 운용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하는지, 감독기관간 유기적 협력관계를 얼마나 확보하는지가 중요한 과제다. 이런 측면에서 굳이 금융감독체계를 인위적으로 개편하겠다는 공약이 실제 얼마나 우리 금융산업 발전과 대국민 금융서비스 제공이라는 측면에서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우리나라 금융에 필요한 것은 정권교체기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감독기구가 아니라 감독을 담당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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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젬마 경희대 교수 gemma.lee@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