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실이 행정부 실무진과 해외 국가를 방문해 '화학물질 영업비밀 심사제도' 운영 현황 파악에 나섰다. 산업계도 개정안 발의 사실을 뒤늦게 인지하고 대응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회원사 중심으로 개정안이 통과됐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여파를 조사하고 있다.

4월 12일자 1면, 3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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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실, 자유한국당 임이자 의원실 보좌진과 고용부, 안전보건공단 실무진은 캐나다와 유럽 각국 등 선진국 제도 도입 사례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19일 출국했다. 27일 귀국하는 일정이다. 이번 선진국 제도 벤치마킹은 고용부 제안으로 이뤄졌다.

환노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송옥주, 김영주, 강병원, 신창현)은 지난해 말부터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내 영업 비밀을 사전 심사하는 '화학물질 영업비밀 심사제도'를 골자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잇따라 발의하고 있다.

MSDS는 화학물질을 안전하게 사용·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기재한 문서다. 화학물질을 공급하거나 제공받아 활용하는 업체는 MSDS를 작성, 사업장에 비치해야 한다. 그러나 유해하지 않은 물질은 기업이 영업 비밀을 근거로 물질 성분과 함유량을 기재하지 않을 수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심사위원회가 영업 비밀 여부를 판단한다. 기업의 자의 판단으로 노동자 알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 더민주 의원들의 주장이다. 현재 영업 비밀 판단은 부정경쟁방지법에 따르고 있다.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고 상당한 노력으로 비밀이 유지된 생산·판매·영업 정보가 해당한다.

더민주 의원들은 유럽연합(EU), 캐나다에서 영업비밀 사전심사제도를 시행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고용부는 기준 자체가 다르다며 합리적인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고용부는 이를 위해 자체 예산으로 이번 출장까지 마련했다.

EU와 캐나다가 영업비밀 사전심사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모든 물질을 MSDS에 기재하는 한국과 달리 이들 국가는 유해성 있는 물질만 MSDS에 기재한다. 유해 물질도 영업 비밀로 가릴 수 있도록 사전심사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반면에 한국은 유해 물질의 경우 영업 비밀로 가릴 수 없도록 법으로 강제했다.

산업계에선 이 같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세계 1위인 반도체, 디스플레이 제조 기업의 핵심 기술이 법으로 강제 노출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천문학 규모의 심사 소요 비용과 신물질 도입 지연 등으로 기초 경쟁력도 심각하게 훼손될 것으로 관측했다. 제도의 현실성도 떨어진다. 매년 도입되는 신물질 6만여종의 영업 비밀 심사를 15~30명의 심사위원회에서 소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산업계 관계자는 “여야 소속 국회의원실이 행정부 재원으로 출장까지 가서 벤치마킹을 하고, 그 가운데에서 강력한 규제만 따와 법 개정을 추진한다면 산업계를 옥죄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