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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산책]뇌의 반쪽을 찾아서

발행일2017.04.19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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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은 뭔가 허전하고 불완전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우리 뇌가 반쪽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 라스무센 뇌염 환자의 경우 대뇌의 반구를 완전히 제거하는 수술을 받기도 한다. 라스무센 뇌염은 좌뇌나 우뇌 가운데 한곳에 만성 염증이 생겨 경련 발작을 일으키고, 결국 지적 장애와 반신마비 증세를 낳는 병이다. 놀랍게도 많은 환자가 대뇌반구 제거 수술을 받은 후에도 지적 활동에 큰 어려움 없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 몸의 사령탑으로 불리는 대뇌의 반이 사라졌는데 어떻게 정상적으로 살 수 있는 걸까.

잃어 버린 기능을 회복하는 능력인 가소성(탄성)이 우리 뇌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뛰어나기 때문이다. 한 번 손상된 뇌는 재 생과정을 통해 기능을 회복하는데 나이가 어릴수록, 재활치료를 받을수록 잘 회복된다. 뇌 기능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신경세포가 증가하거나 각 세포의 활성이 높아지고, 신경세포들을 연결하는 시냅스가 강화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뇌는 무려 반쪽을 제거하고도 원래 기능을 회복한다.

대뇌 절제술을 받은 환자에게서 보듯 우리는 아직도 뇌 신경망의 상세한 부분을 모른다. 고령화 사회의 가장 큰 고민인 퇴행성 뇌질환의 원인과 해결책은 더욱더 그렇다. 과학계와 의학계는 그동안 수많은 연구로 우울증, 뇌졸중,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헌팅턴병, 루게릭병에 대한 후보 치료약을 개발하고 임상 시험을 시도했다.

아쉽게도 치료제 개발은 대부분 실패했다. 뇌과학계에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뇌의 기본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방대한 기초 연구로 우주보다 복잡한 뇌의 미스터리를 풀어 내야 제대로 된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필자는 이를 '실험실에서 침대로(bench to bed)' 연구 방식에서 '침대에서 실험실로(bed to bench)' 방식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21세기 의학 패러다임인 '정밀 의료'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 앞으로 획기적인 신약은 생명 현상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개인별 맞춤형 치료라는 접근 방식으로 개발될 가능성이 짙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이야말로 후발 주자인 우리나라가 뇌과학 선진국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뇌 이해에 필수인 인간게놈 정보는 이미 세계가 공유하고 있다. 새로 개발된 다양한 뇌 연구 기술이 우리나라에 속속 소개된다. 동시에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개발한 독특한 연구 기술도 세계에 알려지고 있다. 이런 교류는 다양한 융합 기술을 낳고, 눈높이를 맞춘 공동 연구로 획기적인 결과를 창출할 것이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져도 결국 연구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뇌 연구 역량은 1998년 뇌연구촉진법이 제정되면서 국제 수준 도전을 본격화하게 됐다. 법에 근거해 정부는 뇌프런티어연구개발(R&D) 사업을 10년 동안 추진했으며, 2011년에는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인 한국뇌연구원을 설립했다.

지속적인 투자 덕분에 우수한 젊은 연구자가 이 분야로 속속 진출하면서 우리나라 뇌과학 연구자의 층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두터워지고 다양해졌다. 뇌과학 분야에서 세계 각국이 다시 하나의 출발점에서 시작하는 오늘날, 우리나라가 여태껏 쌓아 온 추진 동력을 상실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뇌는 놀라운 가소성으로 잃어 버린 반쪽의 기능을 회복하긴 하지만 그래도 좌뇌와 우뇌가 균형있게 존재한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뇌연구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반쪽의 뇌가 각각 연구를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학자와 의학자, 출연연과 대학, 정부와 민간이 그것이다.

그러나 연구 열정이 각인돼 있는 그들의 DNA는 결코 반쪽 결과에 만족하지 않는다. 과학자와 의학자, 출연연과 대학, 정부와 민간이 각각 좌뇌와 우뇌를 맡아 대통합을 이뤄 낸다면 우리나라 뇌과학은 반쪽에 머무르지 않고 온전히 발전을 거듭해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다.

서해영 한국뇌신경과학회장(아주대 의대 교수), hysuh@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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