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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으로 우리 전자·정보기술(IT) 기업의 무역 애로가 속속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한·중 통상 관련 이슈가 연일 뜨겁다. 한국은 중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으로, 중국 입장에서도 한국이 전체 수출에서 네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 2015년 12월 한·중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이래 일본 등 비협정 국가보다 우호적인 조건에서 중국과 교역을 확대하며 중국 시장에서 입지를 굳혀 왔다.

중국은 풍부한 인력과 우수한 생산 기반을 갖추고 있고 지리적으로도 인접해 있어 생산비용 절감과 부품·원부자재 공급처로서 그동안 우리나라 최대 생산 및 수출 전진기지 역할을 해 왔다. 반면에 우리나라도 자동차, 반도체, 액정표시장치(LCD), 가전, 휴대폰 등 세계 최고 기술 수준을 자랑하는 제품들로 중국 산업 발전과 고용 창출, 나아가 수출 상품화에 이르기까지 중국 경제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와 미국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반발한 중국의 단체여행 금지, 통관·검역 지연 등 무역 보복 조치로 우리 기업이 초긴장하고 있다. 직격탄을 맞고 있는 롯데와 여행업계의 피해가 여타 업종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우려대로 TV나 휴대폰 등 전자·IT 제품의 중국 판매가 위축되고, 그 여파가 관련 중소기업의 매출에까지 이어진다면 가뜩이나 어려운 환경에 직면한 우리나라 경제에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다.

때마침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미국도 대한국 무역 적자를 이유로 한·미 FTA 재검토, 우리나라 기업이 많이 진출한 멕시코 국경 강화 등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고 있어 여느 때보다 기업의 불확실성이 커져 있다.

이렇듯 급변하는 정치·경제 상황 못지않게 기업을 둘러싸고 있는 제품이나 기술 또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동안 제조업 중심 산업에서는 품질이나 생산 원가에서 경쟁력을 찾았지만 최근 대두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환경에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공유경제 등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과 경제 현상에서는 또 다른 각도에서 경쟁력을 찾아야 한다.

중국과의 기술 격차나 생활수준이 거의 비슷한 상황에서는 최근의 사드 문제가 아니라 하더라도 지금까지의 경쟁력으로는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다.

이참에 중국과의 관계를 새로 정립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관광 산업이 저가 상품으로 말미암아 국가 이미지 실추는 물론 적자에 허덕이던 것처럼 전자·IT 산업도 중국을 생산기지나 원자재 공급처 정도로만 과소평가해 온 것은 아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때다.

중국은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살고 있는 거대한 시장이고, 미국 다음으로 기업 간 인수합병(M&A)과 스타트업이 활성화돼 있는 나라다. 또 온라인, 드론, 이차전지 등 첨단 부문에서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추고 있거나 잠재력이 매우 큰 경제 대국이다.

전자·IT 산업은 중국의 과잉 생산으로 말미암아 경쟁이 치열한 철강이나 조선, 유화 등 타 산업에 비해 경쟁력과 앞으로의 전망이 매우 기대되는 산업이다. 자율주행자동차, AI, 로봇 등 4차 산업으로 분류되는 미래 산업의 핵심 기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드 문제가 해결되면 모든 것이 풀리는 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는 사드 하나로 고립된 것이 아니다. 세계 정치 질서가 재편되고 있고, 산업 차원이 바뀌고 있는 격변의 시대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구조적으로 산업 정책을 다시 손봐야 하는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하자.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공유, 분산, 자율 같은 새로운 경제 질서가 필요하다. 정부는 새로운 경제 질서에 맞는 역할과 창의 스타트업 기업 육성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삼성전자, LG전자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이 있다. 이들 기업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중소기업을 돕는 정부의 지원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남인석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 상근부회장 namis@goke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