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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근, 루트 이 대표(전 상성전자 무선 디자인 상무)

27년 동안 대기업의 제품 디자이너 생활을 마치고 퇴임한 뒤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정리하면서 최근 흥미롭게 눈에 들어오는 이슈가 있다. 메이커스, 창업, 사물인터넷(IoT), 인터스트리 4.0 등이 그것이다. 이런 트렌드는 완전히 내가 해 온 디자인 개발 환경과 달랐다.

2012년 크리스 앤더슨의 '메이커스'라는 책이 나왔을 때 이젠 어떤 물건이든 공장을 찾지 않고 스스로 제작자가 될 수 있다며 3D프린터 이야기를 했다. 이듬해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차기 집권 연설에서 3D프린터로 미국 제조업에 혁신을 일으키겠다고 선언했다. 그 이후 사이버물리시스템(CPS)에 기반을 두고 구현되는 인더스트리 4.0이 등장했다. 로봇이나 3D프린터 등은 물리시스템으로 활용되고 IoT나 빅데이터는 사이버 시스템으로 제조가 가능해지면서 기존의 대량 생산 방식을 뛰어넘었다. 제조 방식은 개인 맞춤형 생산 방식으로 진화했다. 개인이 디자인한 제안을 제조에서 모두 수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소품종 대량 생산 체제에서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로 바뀐다는 이야기다.

아디다스는 스피드 팩토리라는 공장을 만들었다. 아디다스 퓨처크래프트 MFG를 선보였다. 소비자가 아디다스 사이트에 들어가서 자기만의 디자인 제품을 주문만 하면 제품을 만들어 주는 시스템이다.

벤처캐피털 컬래버레이티브 펀드 대표인 크레이그 셔피로는 한 인터뷰에서 투자를 기획할 때 디자인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진다고 강조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도 디자인의 가치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창업에서 디자인은 핵심 가치이자 전략이다. 디자인 창업으로 성공한 기업도 많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유튜브, 핀터레스트, 에어비엔비가 디자인 출신 창업자다. 우리나라는 우아한형제들, 위트 스튜디오 대표가 디자인 출신 창업자다.

그럼에도 요즘 갓 졸업한 젊은 디자이너는 위기와 사면초가에 몰려 있다. 과거와 달리 엄청난 스펙으로도 취업 등 사회 진출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제 디자이너도 자생력을 길러야 한다. 더 이상 스타일리스트로 디자이닝 하지 말고 디자이너로 브랜딩을 해야 한다. 제품을 디자인하지 말고 상품이나 비즈니스를 디자인해야 한다. 그러려면 디자이너들은 문제 해결에 치우치지 말고 문제 발견을 고민해야 한다.

구글 벤처스 블로그에는 왜 스타트업에 디자이너가 참여해야 하는가(Does your startup needa designer co-founder?)라는 글이 있다. 이 글을 보면 좋은 디자이너는 첫째로 사용자와 인간을 철저히 이해하는 성향이 있다. 둘째는 세상을 바꾸려는 열망이다. 셋째는 만들고 부수는 디자인 사고다.

실제로 엔지니어링적 사고와 디자인적 사고는 분명히 다르다. 대기업 현장에서 이를 충분히 경험해 봤다. 미국 최대 창투사인 KPCB의 존 마에다 교수도 기술 발전으로는 더 이상 사용자를 행복하게 할 수 없고, 디자인과 함께 시작해야 사람들 관심을 끌 수 있으며, 기술이 일부가 아니라 대다수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초반에 합류한 디자이너가 회사 문화를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글로벌 시대에 한국은 하드웨어(HW)나 소프트웨어(SW) 등 어느 한쪽에 주력해서는 안 된다. 브리지가 되는 미들웨어(MW) 강국으로 재편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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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창업은 MW를 강하게 만들 수 있는 중요한 기틀이 되리라 믿는다. 젊은 디자이너들은 디자인 창업이란 챌린지를 자신 있게 하길 바란다. 물론 아직 모자라는 것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민첩함이 중요하다. 덜 완벽해도 된다. 패스트 피시가 슬로 피시를 잡아먹는 시대가 온다. 모자라는 것은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운영하는 창업 지원 프로그램 등 정부의 창업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디자인 전문 회사에서도 양산 이전에 유통과 디자인을 매칭하고 예산을 미리 확보, 양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발하는 곳도 있다. 이런 기회를 적극 활용하면 승산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 커리큘럼도 상당한 개선이 필요하다. 이제 더 이상 어른들의 경험이 내일에 통하지 않는다.

김석근 루트 이 대표 kimsg610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