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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I 과학향기]새로운 맛 만들고 신선함 지키는 맛있는 나노기술

발행일2017.04.16 17:00

나노기술에 대한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지만, 정작 어떤 상품에 적용돼 있는지, 그 상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특히 식품의 경우, 나노기술을 적용한다고 하면 먼저 유전자변형식품(GMO)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하지만 식품에 적용되는 나노기술은 매우 다양하다. 식품 자체에는 변형을 주지 않으면서 가장 맛있고 안전하게 음식을 즐길 수 있게 도와주는 다양한 나노기술을 살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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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치커피 상용화 이끈 초임계 기술

작년부터 편의점에서 새로운 종류의 커피가 눈에 띄더니, 어느새 히트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콜드브루 커피다. 콜드브루는 뜨거운 물로 추출하는 드립 커피와 달리 찬물로 우려내는 커피를 말한다. 일명 더치커피라고도 부른다. 더치커피는 다른 커피에 비해 쓴맛이 없고 향이 오래 간다는 장점이 있지만 1리터(약 10잔)를 만드는 데 무려 12시간이나 걸려서 대량생산하기 어렵다. 이 커피를 어떻게 편의점에서 판매할 수 있게 됐을까? 비밀은 나노기술에 있다.

Photo Image<더치커피를 대량생산하는 데에도 나노기술이 쓰였다. (출처 : pixabay)>

커피의 유전자를 변형했다거나, 새로운 첨가물을 집어넣은 것은 아니다. 10억 분의 1m에 불과한 나노미터 단위의 좁은 틈까지 비집고 들어가 물질의 성분을 추출하는 '초임계 기술'을 적용했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기존 더치커피보다 1000배 이상 빠른 속도로 커피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초임계 기술은 액체와 기체의 중간 상태를 이용하는 기술을 말한다. 물이나 이산화탄소를 넣고 높은 압력을 주면서 온도를 조절하다 보면 두 가지 상태를 모두 갖는 초임계 상태가 나타난다. 이때 물과 이산화탄소는 기체처럼 빠르게 확산되고, 액체처럼 다른 물질을 용해시키는 성질을 동시에 갖게 된다. 이런 특징 덕분에 물질에 나 있는 나노미터 단위의 작은 틈까지 파고 들어가 성분을 녹여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가공식품에 초임계 기술을 처음 이용한 것은 1970년대 카페인을 제거한 '디카페인 커피'를 만들면서부터다. 초임계 상태의 이산화탄소가 커피 원두로 들어간 뒤 분자의 크기가 크고 무거운 커피의 맛과 향 분자는 그대로 두고 작고 가벼운 카페인 성분만 녹여 빼낸다.

이윤우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이 기술을 이용해 콜드브루를 상용화시켰다. 커피 원두를 100만 분의 1m(마이크로미터) 단위로 갈아낸 뒤 미지근한 물을 초임계상태로 만들어 빠르게 반응시킨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시간 만에 약 4만리터(약 40만 잔)의 커피를 만들 수 있는 원액이 생산됐다. 한국야쿠르트에서 이 기술을 이용해 처음 콜드브루 제품을 생산했고, 현재 다른 업체에서도 이 교수팀의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Photo Image<더치커피를 만들 때 사용하던 기존 장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대량생산하기 힘들다. 이윤우 교수팀은 초임계 기술을 적용해서 더치커피를 대량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출처: pixabay)>

이 교수팀이 초임계 기술을 적용한 것은 커피가 처음이 아니다. 이미 참기름을 초임계 기술로 대량생산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초임계 이산화탄소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참기름의 작은 틈을 파고들어가 기름과 향 성분을 녹여낸 것이다. 보통 참기름을 만들 때는 기름을 잘 짜내기 위해 높은 온도에서 참깨를 볶아야 하는데, 이때 참기름의 색이 어두워지고 쓴맛이 생긴다. 하지만 초임계 기술로 추출한 참기름은 노르스름한 참깨 색깔이 기름에 그대로 나타나고 쓴맛도 적다. 이 참기름은 시중에서 일반 참기름보다 비싼 값에 팔린다.

■ 신선도 유지하고 부패 여부 측정하는 나노기술

식품의 신선도를 측정하고 유지하는 데에도 나노기술이 쓰인다. 선물용 육류 포장에 쓰이는 쿨러 백이 대표적인 예다. 쿨러 백은 단순히 온도를 차갑게 유지해 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살균 효과가 있는 은과 참숯 성분을 내뿜어 육류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런 성분이 밖으로 빠져나오게 하기 위해 쿨러 백에는 나노미터 단위의 보이지 않는 미세한 구멍들이 수없이 뚫려있다.

아직 상용화되지는 않았지만, 외국에서는 식품 포장지에 다양한 센서를 부착해 포장된 식품의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기술도 개발됐다. 인도 아미티고등연구소 연구팀은 이산화티타늄(TiO2) 분자를 기반으로 만든 나노센서를 포장지에 심었다. 진공포장 내부로 공기가 새어 들어오면 센서의 색이 변하도록 만든 것이다.

나노 물질을 이용해 냄새만으로 과일의 상태를 측정해 주는 센서도 나왔다. 미국의 씨투센스(C2Sense)라는 기업은 2015년 나노물질과 과일의 냄새 분자가 일으키는 반응으로 과일이 신선한지 부패하고 있는지를 알아내는 후각센서를 개발했다.

이 후각센서에는 탄소나노튜브라는 나노물질이 들어 있는데, 이 물질이 과일에서 나오는 에틸렌 가스를 흡수했을 때 나타나는 전류의 변화를 측정해 과일의 상태를 파악한다. 에틸렌은 과일의 숙성을 유도, 촉진하는 식물호르몬의 일종이기 때문에, 이 가스가 얼마나 나오는지 알면 과일의 상태를 추정할 수 있다. 후각센서로 암모니아와 생체 아민도 측정할 수 있어서 과일뿐 아니라 육류와 생선, 가금류의 부패 정도도 확인할 수 있다.

많은 경우, 나노기술을 식품에 적용한다고 하면 유전자변형식품(GMO)이나 식품에 나노입자를 넣어 기능성을 부여하는 기술을 떠올린다. 물론 그런 나노기술도 식품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식품 자체를 맛있게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나노기술도 충분히 많다. 콜드브루 커피와 쿨러 백, 후각센서처럼 말이다.

글 : 최영준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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