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비공개 판결을 내린 반도체 산업 분야 기밀 보고서가 또 다른 언론사로 유출된 것으로 보여 논란이 예상된다.

한 방송사는 지난 24일 '[취재후] 반도체 직업병 10년 전쟁…삼성은 진실을 말했나?'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 본문에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종합진단보고서 본문 내용(505페이지)이 인용됐다. 공정 흐름 등 민감한 정보는 걸러졌으나 산업기밀 보고서가 또 언론에 흘러들어갔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고용노동부가 작성한 820여쪽 분량의 이 보고서에는 삼성전자 기흥·화성 반도체 공장의 안전보건 진단 내역과 함께 생산공정 흐름도, 역할, 배치, 장비 종류, 스펙, 작동방법 등 기밀 정보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 수원지법 행정2단독 김강대 판사는 지난 15일 이 보고서를 공개하라는 행정소송에서 “회사 경쟁력과 영업상 이익을 상당히 침해할 우려가 있다”면서 “진단총평을 제외하고는 비공개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앞서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 신문사에 이 자료를 그대로 공개한 것을 두고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보고서가 국회로 제출된 것은 작년 국정감사 때다. 강병원 의원은 국감 때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을 다그쳐 이 자료 전체를 받아냈다. 당시 이 장관은 영업기밀이 담겨 있어 일부만 제출하겠다고 했으나 강 의원은 자료 전체를 요구했다. 자료 제출 여부를 놓고 줄다리기가 계속되자 환경노동위원장 홍영표 더민주 의원은 “영업비밀을 어디 유포했다 그러면 처벌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강 의원 요구에 힘을 보탰다.

이후 보고서 내용이 인용된 기사(3월 21일자 법원 삼성반도체 보고서 영업비밀 판결 논란)가 나오면서 논란이 커졌다. 보고서는 강병원 의원이 제공했다고 시인했다. 강 의원 측은 기밀 고의유출 논란이 일자 24일 “보도된 내용은 법원이 공개해도 좋다고 판결한 '진단 총평'에 나온 일부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해당 언론이 당일 출고한 후속기사 '삼성전자의 영업비밀 유출 주장을 반박합니다'에는 본문 내용도 인용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익명을 요구한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세부 내용을 밝힐 수는 없으나 총평이 아닌 본문 내용도 들어가 있다”면서 “1~40페이지 이후로는 모두 본문”이라고 밝혔다. 강 의원 해명과는 달리 보고서 전체를 봤거나 입수했다는 증언인 셈이다. 반도체 업계에선 언론에 흘러들어간 보고서가 다른 곳으로 유출된다면 삼성전자에 상당한 타격을 입힐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당사자인 삼성전자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블로그를 통해 “법원이 영업비밀로 인정한 문서를 제3자가 열람했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기밀자료 고의 유출에 따른 유감 표명도 우회적으로 했다. 삼성전자는 “정부와 산하기관 등에 모든 정보를 투명하고 성실하게 제출하고 있다”면서 “삼성의 지적 자산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에 따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 기술은 국가 핵심 산업으로 지정돼 '산업기술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로 보호받고 있다. 강 의원의 자료 유출은 감사나 조사를 통해 알게 된 비밀을 정당한 사유 없이 누설할 수 없다는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도 위배된다.


강 의원 측은 “지면 매체를 제외한 다른 언론에는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보고서 내용을 보도한 방송사도 “국회에서 보고서를 입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