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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용 로봇은 신규 노동인구의 유입이 적은 제조업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사진=전자신문DB)

고령화국가로 넘어가면서 제조업 강국 한국에 비상이 걸렸다. 신규 노동인구의 유입이 미미한 까닭에 실무 종사자들의 세대교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에 힘을 얻는 분야가 '로봇'이다. 이번 '컬처 에센스(Culture Essence)'에서는 대한민국 제조업 속 산업용 로봇 세계를 알아본다.

◇산업용 로봇, 취업경쟁자 아닌 생산인력 대체자

흔히 산업용 로봇이라고 하면 인간의 경쟁자로 생각하기 쉽다. 수출 위주 무역국가인 우리나라는 대외 경쟁력 확보 방법으로 대량생산과 인건비 조절을 통한 가격경쟁력 확보를 선택해왔다. 이에 해외공장 진출, 외국인 노동자 유입과 함께 로봇을 통한 생산라인 자동화로 인력 수급을 대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이 취업난의 근본 원인처럼 인식되면서 산업용 로봇에 부정적인 시각이 드리워졌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산업용 로봇이 제조업에 등장하기 시작한 실질적인 이유는 국내 대중의 생활수준 향상이라는 부분이 크게 작용했다. 1970~1980년대 호황기로 의식주가 해결이 된 대중은 여유시간과 편한 업무를 추구하는 경향이 짙어지며 소위 '4D산업(Dirty·Difficult·Dangerous·Distance)'의 대표 격인 제조업 분야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이를 효과적으로 대체할 방법이 바로 산업용 로봇이었다. 이에 대기업 중심으로 산업용 로봇의 수요가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스마트폰이나 반도체 등 나노 단위의 초정밀부품이 주력 수출품으로 자리 잡은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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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용 로봇의 도입에는 인건비 절감뿐만 아니라, 생활수준 향상이 만들어낸 기피업종의 인력수요에도 영향을 받았다. (사진=전자신문DB)

한 제조업 관계자는 “로봇을 통한 산업자동화는 생산원가 절감과 생산성 향상으로 등장한 것도 있지만, 국내 대중의 제조업 기피 경향에 영향을 받은 것도 상당히 크다”면서 “노동력 감소는 곧 생산성과 대외경쟁력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기업들은 자연스럽게 산업용 로봇과 자동화를 선택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편중의 로봇자동화, 중소기업도 바뀌어야

다양한 이유로 등장하게 된 산업용 로봇은 산업 전 영역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생긴 문제가 구조적 불균형과 잠재 생산성 저하다. 산업용 로봇은 안정적 제품생산을 위해 정밀도와 안전성, 확장성 등을 갖춰야하는 정밀기계로 까다로운 신뢰도 검증이 뒤따른다. 이를 충족하는 것은 ABB, 쿠카, 야스카와, 가와사키, 덴소 등 유럽·일본 등의 해외기업들의 제품으로 정밀도가 뛰어나지만 가격이 비싸고 운영방법이 까다롭다. 막대한 자본과 소비시장을 가진 대기업은 투입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을만한 이익을 거둘 수 있어 빠르게 전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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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은 생산품질을 좌우할 수 있는 정밀도와 안전성, 확장성 등이 검증된 외산 산업용 로봇을 도입하기가 쉽다. 하지만 자본력과 시장성이 부족한 중소기업에게 산업용 로봇은 쉽사리 선택하기 어렵다. 해외업체 쿠카의 로봇시연을 보고 있는 관람객들. (사진=전자신문DB)

하지만 중소기업의 입장은 다르다. 우선 소비시장이 대기업에 비해 협소하고 자본도 부족해 값비싼 로봇을 선택할 수 없다. 이에 로봇을 활용한 생산성 향상에는 무관심하고 기본시설 유지에 급급하다.

지난달 8일 중소기업연구원이 발표한 '제조기업의 생산성 고도화 지원방안 연구' 보고서에서는 중소기업 503개사 중 60.6%가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한 제조공정 스마트화에 관심이 없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신제품 개발이나 생산성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이유로 '자금과 인력부족(52.5%)'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아날로그식 생산방식 고수는 근로자 노령화라는 취약점에 크게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일례로 인천 남동공단, 경기 안산시 시화공단 등 국가 주요산업단지 내 중소기업들은 대체인력과 숙련공 부재의 문제로 최근 근무정년을 65세까지 늘였다. 물론 대체인력으로 외국인 근로자들을 수급하고 있지만 이들마저도 기피하는 일부 제조분야에서는 인력수요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국가 잠재 생산성의 약화도 우려된다.

산업계 일각에서는 “4차 산업시대에 직면한 대한민국이 발전하려면 풀뿌리 기업인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키워야한다”면서 ”이를 위해 기업별 맞춤형 산업용 로봇과 자동화시스템 개발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국내 로봇업계, 중소기업 맞춤형 로봇 개발 박차

국내 로봇업계는 이런 중소기업들의 요구에 발맞춰 가격 대비 뛰어난 성능의 로봇과 자동화시스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산업현장에서 많이 쓰이지만 공간 활용이나 처리속도 면에서 부족한 직교형 로봇보다 여러모로 이점이 큰 다관절 로봇에 주목하고 있다. 다관절로봇 개발에서 현재 각광받는 기업은 로봇 및 산업자동화시스템 전문기업 SRS와 로봇 분야 스타트업 민트로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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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S(대표 이기주)는 2015년 미국 IT기업 테러다인에 인수된 덴마크 로봇기업 '유니버설로봇'의 대리점이자 국내 최고수준의 자동화시스템을 중소기업에 공급하는 전문기업이다. 이 기업은 유니버설 로봇을 활용해 인간과 로봇의 협업이 가능한 콜라보레이션형 산업자동화 시스템을 만들어 중소기업에 공급하고 있다.

최근에는 유니버설 로봇이 소화하기 어려운 저가보급형 로봇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산업용 로봇 SR시리즈를 자체개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SR시리즈는 유니버설 로봇을 취급하면서 접한 중소기업의 요구를 바탕으로 새롭게 개발한 로봇이다. 특히 무게 중량(페이로드)과 길이(리치) 조절, 커스터마이징 모듈 등 산업별 상황에 맞출 수 있다는 장점으로 다양한 산업군의 중소기업에 생산성 향상의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 로봇 스타트업인 민트로봇과 서울시립대, 성균관대 등 산학 협업으로 중소기업 맞춤형 국산 자동화설비를 구축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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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S는 로봇 및 시스템자동화 전문기업으로, 유니버설 로봇을 활용한 중소기업의 자동화시스템 구축을 돕고 있다. 최근에는 산업용로봇 자체개발, 스타트업 및 산학협력을 통해 중소기업 맞춤형 시스템자동화를 추진하고 있다. (사진=SRS제공)

이기주 SRS 대표는 “최근 중소기업은 인력수요 충족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로봇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지만 기존 로봇시스템들이 가격이나 운용난도 면에서 장벽이 높아 접근이 쉽지 않았다”면서 “기존 외산대비 저렴한 유니버설로봇을 활용한 자동화설비를 공급하면서 중소기업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다 많은 중소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생산자동화설비를 마련하기 위해 산업용 로봇 SR시리즈의 자체개발과 스타트업과의 협업, 산학 협력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과거 '휴대폰 필름 타발 금형' 국산화에 최초로 성공해 관련 업계의 경쟁력을 일궈냈던 것처럼, 로봇을 이용한 중소기업 경쟁력 확대도 추진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민트로봇(대표 강형석)은 스타트업으로서는 드물게 로봇 분야를 연구개발하는 설립 3년차 기업이다. 이 기업은 외산로봇의 가격이 비싸 중소기업들이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사실에 착안, 핵심부품을 자체개발하면서 로봇플랫폼의 대중화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이들이 만들어낸 중공(中空)관절 모듈 '할로인트(Holloint)'는 외산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난 성능과 가격경쟁력을 갖춰 국내 로봇시장의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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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로봇은 병렬구동을 활용한 중공 관절 모듈의 국산화에 성공하며, 산업용 로봇의 국산화와 경쟁력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민트로봇 제공)

강형석 민트로봇 대표는 “중소기업이 로봇을 활용해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싶어도 장비 가격과 취급 방법 등의 부담으로 포기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면서 “기업의 모토인 'Cost-Effect'처럼 뛰어난 국산 로봇의 개발과 보급으로 중소기업도 살리고 국산 로봇시장의 경쟁력도 높이겠다는 취지로 기업을 설립했다”고 말했다.

이어 “감속기나 모터 등 핵심부품을 국산화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제조업의 보수성 때문에 국산부품과 로봇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는 점은 국내 로봇시장과 중소기업 모두를 어렵게 한다”면서 “믿고 쓸 수 있는 뛰어난 성능의 국산로봇을 개발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물론 정부지원과 사회적 관심 등이 뒷받침돼야 전체적인 산업과 국가경쟁력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로봇업계 일각에서는 로봇기술을 포함한 ICT 전반에 있어 국산제품의 대외 신뢰도가 낮은 상황임을 지적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자체적인 노력과 함께 정부나 기업, 공공기관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동선 전자신문엔터테인먼트 기자 dspark@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