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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슬프게 하는 세 편의 자료를 보고 있다. 먼저 지난 15일 끝난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식에서 리커창 총리가 행한 '2017년 정부활동보고' 전문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A4용지 40쪽을 넘을 방대한 양이다. 지난 한 해를 회고하며 올해 활동 전반의 계획과 중점 활동 임무를 정리한 내용이다. 중국의 어제, 오늘, 내일을 망라한 국가 보고서다.

적시된 내용이 얼마나 사실 통계로 뒷받침되고 있는지는 별도로 치고 나라의 형편을 소상하게 설명하고 지금부터 할 일과 목표를 뚜렷이 표명해 놓고 있다. 결론은 중국 경제가 '속도 둔화의 리스크'를 넘어 '퀄리티의 향상'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리커창 총리는 폐막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국영 미디어가 아닌 미국의 CNN을 첫 질문자로 꼽아 미국 중시 자세를 보여 줬다. 당면의 초점인 내정과 그 연장선상에 있는 외교를 아우르는 전략이 돋보인다.

또 하나의 자료는 지난 14일 일본 총리실에서 열린 '2017년 일본 경제재정자문회의(제3회)'에서 행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의 강연이다. '지속 가능하고 공유된 번영으로의 이행'이란 제목으로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부의 국무위원들과 민간 전문가들 앞에서 발표한 것이다. 일본 정부의 가장 권위 있는 자문기구인 경제재정자문회의는 올 상반기에 주로 세계 경제 정세와 정책 과제에 관해 논의할 방침이라고 한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선진국은 생산성 신장 둔화와 격차 확대라는 공통 과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성장 과실을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소득 공평화, 교육·건강·개호 서비스 부문 강화, 이노베이션 촉진 등을 정부가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아베 총리는 “아베노믹스의 제2단계에서 구상한 내용과 상통한다”면서 “4차 산업혁명을 배경으로 한 연구개발(R&D) 투자 확대와 비정규직 처우 개선,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어도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화답했다.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있는 이때 총리가 정부의 주요 회의에 미국 경제학자를 불러 장관들과 공부하면서 정책을 점검하고 그 모습을 국민에게 낱낱이 알리는 소통의 자세가 아베 정권의 지지율 고공행진을 떠받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마지막 자료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모든 정부 부처에 규제 개혁 특별 팀 설치를 촉구하는 새로운 대통령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좌충우돌하는 것 같아도 굳건히 지키는 원칙은 제조업의 고용을 미국으로 돌리기 위한 규제 개혁, 세제 개혁(법인세 감면), 무역 정책 전환 등 3개 기둥이다. 그는 정부에 의한 과잉 규제가 미국 경제와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선거 유세 중에도 계속 주장해 왔다.

정부 부처는 대통령령 서명일로부터 60일 이내에 규제 개혁 담당자를 지명하고 특별 팀을 둬야 한다. 특별 팀은 각 부처에 있는 기존 규제를 정밀하게 조사해 폐지와 수정을 기관장에게 제언해야 한다. 트럼프 정권은 버락 오바마 전 정권이 3000개 이상의 규제를 늘려 총 8730억달러(약 1000조원)의 부담을 납세자에게 안겼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정부 기구에 대해 1개의 새로운 규제를 도입할 때마다 기존 규제 2개 철폐를 의무화했다. 동시에 연방정부 공무원 수를 깜짝 놀랄 정도로 줄이겠다며 현재 비어 있는 자리의 충원을 중단하고 새로운 자리를 만들지 않겠다고 했다. 암반 규제에 갇힌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

우리나라가 국정 농단 사태로 대통령 파면에 이르는 동안 세계는 질주하고 있다. 리커창의 연설, 아베의 공부, 트럼프의 명령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곽재원 서울대 공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