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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존경하는 기술사상가 케빈 켈리의 신작 `인에비터블`(The Inevitable) 한글판이 올해 초 출간됐다. 지난해 6월 출간된 원서를 접한 뒤 줄곧 미래기술에 대한 영감으로 가득찬 이 책이 번역되길 간절히 희망했다. 기대에 부응하듯 국내 대표적 과학전문 저술가인 이한음 선생의 유려한 옮김 글월로 미래 정체를 궁리하는 독자들이 궁금증을 풀 수 있게 됐다.

“인공지능이 전기처럼 흐르는 세상, 미래는 우리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도발적인 표제어에 이끌려 밤새워 읽어 내렸다. 이 책은 향후 30년을 사정권에 넣고, 인류의 삶을 결정할 12가지 법칙을 마법처럼 거침없는 에너지로 뿜어내고 있다.

켈리는 1980년대에는 거의 무시했던 인터넷과 웹, 모바일 시스템이 30년 동안 지구촌 중앙무대에 자리 잡았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다음 30년간 우리가 불가피하게 맞닥뜨릴 기술의 시대적 조류(Megatrend)를 의인화해 재치 있게 풀어낸다.

앞으로 세계 질서를 빚어낼 테크놀로지는 모든 것을 명사(결과)에서 동사(프로세스)로 나아가게 한다. 원천은 인공지능이 환경 속에 파고드는 인지화(Cognifying)에 있다. 인지화 기술은 모든 것을 흐르게 한다. 또 사람들은 읽기(Reading) 대신 화면보기(Screening)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모든 정보를 습득한다. 이에 따라 세상의 재화와 서비스는 소유에서 접근으로, 다시 우리 모두의 것으로 공유된다.

우리 삶을 에워싼 테크놀로지는 더욱 가까이 다가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도록 걸러내고(Filtering), 때로는 전혀 다른 요소들을 뒤섞어 새로운 가치를 파생한다. 부상하는 테크놀로지는 사물과 상호작용하고 모든 것을 추적하며 우리 물음(Questioning)에 대답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테크놀로지는 독자적으로 나아가지 않고, 인간과 기계를 세계적인 초유기체로 연결한다. 인터넷의 다음 시대를 살아갈 미래의 사람들 관점에서 보는 현재 메가트렌드는 단지 새로운 시작(Beginning)일 뿐이다.

이러한 관점은 언뜻 기술결정론적 관점에서 세상 질서를 규정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인류의 거대사를 관통하는 테크놀로지의 자기조직화 원리를 테크늄(Technium)으로 전제하고, 미래의 정체를 기술 합리성과 자신의 통찰력으로 정갈하게 엮어냈다. 그리고 완벽한 검색과 안전한 기억, 행성 규모의 지적 능력이라는 초유기체 인터넷 시대로 변하면서 위대한 기회가 열리고 있다고 낙관한다.

`인에비터블`에 따르면 현재 인터넷 생태계를 재편할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확장현실, 로봇, 블록체인, 사물인터넷(IoT), 싱귤래리티 등과 같은 첨단기술의 중력장은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4차 산업혁명을 넘어 포스트 4차 산업혁명으로 안내할 전망이다. 다소 거친 표현일 수 있지만, 필자는 이들 기술의 이정표를 `5차 산업혁명의 섶다리`라고 표현하고 싶다.

섶다리는 문자 그대로 잎나무, 풋나무 등으로 얼기설기 엮은 다리다. 섶다리는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지름길이 되고 사람들에게 소중한 삶의 플랫폼이 된다. 4차 산업혁명은 물리적으로 흩어져 작동하는 사람과 사물, 공간, 시스템을 정교하게 연결하고 활성화하는 거대 여정이다. 4차 산업혁명이 중천에 떠오르면 테크놀로지는 또 다시 자기진화와 자가증식의 단비를 품고 다음 단계의 문명시스템과 조화를 시도할 것이다.

그렇다고 테크놀로지가 일방적인 감정을 갖고 자기 의지로 작동하는 터미네이터의 모습으로 다가오게 해서는 안 된다. `인에비터블`이 시사하는 준엄한 가치는 인간의 따뜻한 마음과 자상함, 배려와 애정, 자연의 지혜가 조화를 이룬 초지성(Super-Intelligence)과 초마음(Super-Mind)을 지닌 테크놀로지를 맞이하는 것임을 저자는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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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원규 IP노믹스 전문연구위원 hawongyu@gmail.com